영화 한 편이 마음을 뒤흔들 때가 있죠. 화면 속 장면들이 현실처럼 다가와 숨을 멈추게 하고,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 말이에요. 오늘은 그런 영화 중 하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 드라마를 넘어, 우리에게 인간 본성과 평범함 뒤에 숨은 공포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아우슈비츠 옆, 평온한 일상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2023년에 개봉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작품으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죠.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대신, 회스 가족이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서 보내는 평온한 일상을 건조하게 그려냅니다.
화면 속에서 회스의 아내 헤드비히는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은 웃으며 뛰놀고, 루돌프는 가족과 강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평화로운 장면 뒤로, 총소리, 비명, 화장로의 굉음이 끊임없이 들려오죠. 이 대조적인 연출은 관객에게 강렬한 불편함을 안겨줍니다. 어떻게 저런 끔찍한 곳 옆에서 이렇게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의 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유대인들의 고통이나 학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간접적인 암시와 음향으로 그 공포를 전달해요. 예를 들어, 수용소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나 멀리서 들리는 기차 소리, 그리고 정원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굴뚝의 모습 같은 요소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이런 연출은 마치 관객 스스로 그 너머의 비극을 상상하게 만들죠.
특히 영화의 음향 디자인은 정말 압도적이에요. 제96회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소리가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지배합니다. 평온한 정원에서 나는 새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기계음과 뒤섞일 때, 그 불협화음은 마치 우리 마음속에 직접 파고드는 것 같아요. 이건 극장에서 꼭 느껴봐야 할 경험이에요.
평범함 속의 악
영화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회스 가족이 보여주는 악의 평범성이었어요. 이들은 괴물처럼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중산층 가족처럼 느껴지죠. 헤드비히는 정원을 사랑하고, 자식들을 챙기며, 심지어 이웃과 사소한 다툼을 벌이기도 해요. 루돌프는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이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비극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해요. 루돌프 회스는 역사 속 실존 인물로,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시스템을 운영했지만, 동시에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했죠. 영화는 이런 모순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악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걸까?
조나단 글레이저의 치밀한 연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우슈비츠 박물관의 자료와 생존자 증언, 심지어 루돌프 회스의 고백록까지 샅샅이 조사했다고 해요. 그 결과,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예술적인 감각으로 재구성되었죠. 특히 숨겨진 카메라 기법을 사용해 회스 가족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기법은 관객이 마치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에요. 화려하지 않지만, 모든 장면이 치밀하게 계산된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어,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몇몇 장면은 실제 폴란드인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영화를 더 생생하게 만들어줍니다.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8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강렬하게 울립니다.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요. 무감각과 방관이 어떻게 비극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죠.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어요. 화면 속 회스 가족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들의 일상이 때로는 내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어요. 이 영화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입니다.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비극을 새롭고 강렬한 방식으로 전달하죠. 극장에서의 경험을 강력히 추천드려요. 음향과 영상이 주는 압도적인 몰입감은 집에서 보기엔 아쉬울 거예요. 이 영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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